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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리즐다보(L’Isle-d’Abeau) : “녹색 완충도시”가 옥외광고를 다루는 여섯 갈래 서사

조회수 : 7 출처 : 저자 : 유병렬

L’Isle-d’Abeau는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 지역의 이젤르 주에 위치한 계획도시로, 리옹에서 약 35km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초반, 급속한 도시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리옹의 위성도시로 개발되었다.



1. ‘조망’이 곧 정체성 — 추가 규제의 층위와 배경


리즐다보는 1970년대 신도시 설계 때부터 “공원에서 알프스까지 시야가 탁 트이는 저층 스카이라인”을 도시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 설계값은 2019년 광역 옥외광고 조례(RLPi) 초안이 마련될 때 “LED 스크린 전면 금지”라는 강수로 되살아났다. 고속도로·국도 접속로·외곽 상업지대를 제외한 생활권 전역이 “디지털 광고 청정구역”으로 묶였고, 정적 패널조차 건물 높이의 6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됐다.


다른 CAPI(포르-드-릴 광역공동체) 소속 시·군이 국가 기본규정만 따르는 것과 달리, 리즐다보가 한발 더 앞서 나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인접 대도시(리옹·그르노블) 사이에서 “조용한 주거 거점” 차별화를 하지 못하면 대형 물류허브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략적 두려움. 둘째, 2022년 주민 공청회에서 “통행량↑ + LED 판넬↑ = 빛공해와 시각 피로”라는 우려가 압도적 다수 의견으로 제시됐다는 정치적 압력이다.


이 결과 세수 감소를 감수하고서도 ▲디지털 광고 설치 면적 –31% 야간 소등 시간 확대(23~6시) 통행량 8,000대/일 미만 도로 광고 전면 금지 같은 고강도 조치를 채택하게 됐다.



1-1. 녹색 커튼 프로젝트 — 식생과 광고를 같은 캔버스로 다루는 실험


녹색 커튼 사업은 2018년 환경 담당 부시장 마리옹 라플뢰르가 일본 오사카시 사례를 벤치마킹해 발의했다. “덩굴식물로 외벽을 감싸면 냉방 부하를 15% 줄이고 시각적 단조로움도 완화한다”는 논리였다. EU LIFE 보조금·광역공동체 기금·민간 자재 후원을 합쳐 총 65만 유로가 투입됐고, 2024년까지 공공건물 11곳, 외벽 2,000㎡가 녹화됐다.


사업 설계 단계에서 시는 OOH·DOOH와의 관계를 명확히 했다. 


-녹색 커튼이 덮인 파사드에는 상업 광고 불가. 

- 단, 스마트 센서가 수집한 온·습도, 미세먼지 저감량을 보여주는 ‘인터랙티브 정보 패널’ 1대를 예외로 허용

- 화면 하단 20%는 공익 캠페인 전용 슬롯으로 고정


즉 식생(視·植) 일체형 디자인을 통해 광고를 “덮어버리는” 대신 “정보판으로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광고·환경 의제를 동시에 해결한 셈이다.



소결: “광고는 숨죽인 채, 풍경과 공존하라”


리즐다보는 대도시권 교외라는 태생적 약점을 ‘경관 우선’이라는 정치·문화·경제 논리로 역전시켰다. TLPE 인상·LED 금지·녹색 커튼·DOOH 공익 슬롯 의무화가 한데 엮여 “세수 < 풍경”이라는 철학을 재정·법률·기술 시스템에 고스란히 집어넣은 사례다. 광고주가 이 도시에서 성과를 내려면 콘텍스트 기반저휘도·저소음 디자인 채택 공익 메시지와 상업 메시지를 혼합한 ‘전자 게시판’ 모델 가구 ID 데이터 대신 시간·위치·행동 맥락을 활용해 타기팅 전략을 짜야 한다.


이처럼 경관 규범과 공익 기여를 동시에 요구하는 프랑스식 모델은 “광고와 풍경의 공존”이 수사(修辭)가 아니라 재정·기술·정치가 맞물린 운영 매뉴얼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작은 도시인 리즐다보가 증명하고 있다.



2. 프랑스 소도시들의 옥외광고와 경관 사이의 관계 설정 문화


프랑스 동부의 신도시 리즐다보는 2026년부터 지방 옥외광고세(TLPE)를 겨우 1.8%만 인상하면서도 광고물 설치 면적을 5%가량 줄이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내걸었다. 얼핏 보면 세율이 미미하게 오르는 것만으로 광고 억제 효과를 기대하는 계산이 성급해 보이지만, 이 소도시는 광고세 바깥에서 유입되는 두 개의 재정 파이프 — 관광세(taxe de séjour)와 중앙정부의 경관 보호 보조금 — 를 이미 안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910년부터 이어져 온 관광세는 리즐다보가 보유한 가장 오래된 자구 재원이다. 호텔, 게스트하우스, 민박 플랫폼이 숙박객 한 사람당 하룻밤마다 0.20∼4.40유로를 대신 징수해 시에 납부하기 때문에 징수 누락 위험이 거의 없고, 법으로 지출 목적이 ‘관광객 환영·도시 홍보·환경 보전’ 분야로 묶여 있어 경관 사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 2023년 기준 이 세목에서 들어온 돈은 38만 유로였으며, 그중 절반이 넘는 21만 유로가 가로 경관 정비와 녹색 커튼 유지, 관광 안내판 교체에 쓰였다.


같은 세목에 10%를 얹어 걷는 이즈르(Isère) 도의 가산세는 자전거길 경관 펀드로 재배분되는데, 이 역시 리즐다보의 녹지 관리비와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시는 광고 세수입이 다소 줄어들어도 관광세 계정을 통해 경관 예산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는 이중 안전망을 가진 셈이다.


여기에 더해 환경부(MTECT)가 운용하는 ‘경관계획법’ — 지금은 기후 적응 예산으로 통합되어 매년 최대 70%까지 보조금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이 두 번째 안전판이다. ‘도시 풍경·생태 회복’ 항목으로만 연간 약 1억 유로가 전국에 배정되고, 지자체당 진단 3만 유로·투자 30만 유로 한도에서 지원이 이뤄진다. 리즐다보는 2024년 ‘그린커튼 2.0’ 프로젝트(도심 1km 수직 녹화와 LED 간판 감축)를 제안해 19만 유로를 따냈다. 이 돈으로 노후 합판 광고판을 철거하고, 신규 녹화면적의 초기 유지비를 충당하면서 도시 예산을 거의 쓰지 않았다.


이 두 갈래 재원이 동시에 작동하자 TLPE를 인플레이션 정도만 살짝 올려도 실질적 재정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시가 노리는 효과는 세수를 더 걷는 데 있지 않고, 소규모 게시 사업자가 신규 디지털 패널 투자를 망설이도록 만드는 ‘가격 장벽’을 형성해 광고 총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실제로 TLPE 인상분으로 연 2만 5천 유로가 추가로 들어오지만, 광고 억제 실적을 근거로 도(道) 차원의 환경 보조를 더 받을 수 있어 외부 교부금은 그 두 배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주민 역시 “광고판이 줄어들어 시야가 깔끔해지고, 세입은 녹지 예산으로 되돌아온다”는 설명에 대체로 호의적이어서, 2024년 여론조사에서는 70%가 넘는 응답자가 세율 인상과 광고 규제를 동시에 지지했다.


이렇게 정리해보면 리즐다보가 세수보다 풍경을 앞세우는 역설적인 공식은 단순하다. 숙박객이 낸 돈과 국가가 얹어준 보조금이 광고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보다 크다는 방정식이 성립하자, 시는 ‘광고를 많이 붙일수록 손해’가 되는 역인센티브 구조를 고안해냈고, 그 덕분에 고강도 RLPi 규정, 녹색 커튼 확대, 공익 DOOH 슬롯 의무화 같은 정책을 재정부담 없이 밀어붙일 수 있었다.


요컨대 프랑스 지방도시들이 ‘조망권’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미학적 신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지키는 편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돈을 가져다준다는 계산된 재정 논리가 단단히 깔려 있는 것이다.



결론: “광고를 덜어야 재정이 완성된다”는 프랑스형 역설과, 그 안에서 살아남는 OOH·DOOH 전략


2025~2026년 리즐다보 사례가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교훈은, ‘경관 우선’이라는 정치·문화적 슬로건이 실제 예산 흐름까지 바꾸면, 광고 억제와 재정 안정은 양립 가능한 목표가 된다는 점이다. 광고를 줄이면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직선적 통념은, 프랑스 지방 재정구조 안에서는 관광세·국가 경관 보조라는 두 갈래 우회 수로에 의해 뒤집힌다.


숙박객 한 사람이 내는 몇 유로, 그리고 환경부가 조성한 기금이 합쳐져 지방 옥외광고세(TLPE) 인상분보다 훨씬 큰 재원을 꾸준히 공급하고, 그 재원이 다시 녹색 커튼·가로 경관 정비·광고판 철거 같은 사업으로 환류되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 ‘세수 < 풍경’이라는 역산이 시 재정의 기본 공식으로 굳어진다.


이때 시가 광고 억제에 사용하는 가장 유력한 도구는 ‘규제형 과세’다. TLPE를 인플레이션 수준만큼만 올리더라도, 전력비·설치비·관리비에 민감한 소규모 게시업체가 신규 LED 패널 투자를 미루게 되는 가격 장벽이 만들어지고, 이는 곧 설치 면적 감소로 이어진다. 행정은 세율로 직접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통한 보상을 이용해 광고 총량을 조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리즐다보가 LED 스크린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전자 게시판 모델’로 제한 허용한 대목은, 광고 규제라 하더라도 정보·안전·공익 기능을 살려두면 상업성과 공공성이 동시에 충족된다는 현실적 절충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일 노출 시간 30% 공익 슬롯, 밝기·소등 의무, 에너지 사용량 보고 같은 조건이 까다롭지만, 운영사 입장에서는 ESG·CSR 홍보 수단이 되고, 시 입장에서는 긴급 알림 인프라를 ‘무상 확보’하는 결과가 된다.


더 나아가 녹색 커튼 프로젝트는 “식생으로 파사드를 덮어 광고를 숨긴다”는 단순 미관 개선을 넘어, 온열 저감·탄소 흡수·미세먼지 차단 데이터를 인터랙티브 DOOH에 실시간 노출해 “도시 환경의 계기판”으로 활용하는 실험까지 진화했다. 이는 곧 OOH와 도시 생태·보건 데이터가 통합되는 2세대 DOOH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결국 리즐다보가 증명한 것은, “광고가 적어질수록 오히려 도시가 더 많은 자원을 얻는다”는 아이러니가 제도·예산·기술을 정교하게 엮을 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지방도시들이 조망권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미학적 고집만이 아니라, 경관 프리미엄이 장기 재정과 직결된다는 냉정한 숫자 계산이 이미 끝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OOH·DOOH 산업이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려면, 경관과 공익을 먼저 설계하고 상업성을 그 위에 탑재하는 역(逆)발상적 모델이 새로운 표준이 될 수밖에 없다.

담당부서 : 연구조사부 연락처 : 02 · 3274 · 2825 이메일 : chokh39@lofa.or.kr